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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민주주의의 그늘과 틈
저자 강우진(경북대학교)


[민교협의 시선] 한국 민주주의의 그늘과 틈

촛불 혁명의 열정의 시간과 정권교체의 감격의 순간이 1년여 지난 이 시점 우리가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촛불 혁명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 정신을 실현해 가고 있는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는 화려하다.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주년 4분기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68%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7~29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수치는 같은 시기 전직 대통령 노태우 41%, 김영삼, 59%, 김대중 63%, 노무현 22%, 이명박 32%, 박근혜 54%의 지지율과 비교해 볼 때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 또한, 집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 또한 전례를 찾기 힘든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2017년 8.15 경축사를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운전자론이 외교적인 결실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적인 남부정상회담과 북미 정당회담이 4월과 5월에 연이어 열릴 예정이다.(4월 6일 발표된 한국갤럽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74%를 기록. 4월 3~5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여간의 노력과 결실을 평가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미스테리하다고 까지 이야기되는 국정 지지율과 동북아 체제변화의 기대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문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촛불혁명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는 제도적인 안정성과 역동성을 함께 가진 예외적인 민주주의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대표조차 되지 않은 파편화된 많은 시민들과 중요한 이슈들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 1년여 동안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제도적인 제약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슈들이 법제화의 문턱에 걸려있는가? 하지만 중요한 많은 이슈들은 정치적인 의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편향된 의사결정 과정을 무의사결정(non-decision)의 개념을 통해서 비판했던 바흐라츠와 바라츠(Bachrach and Baratz, 1970)의 논의가 촛불 혁명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설득력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글쓴이만의 생각일까? 몇 가지 중요한 문제만 우선 살펴보자.  

첫째,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빠르고도 급격한 투표율 하락이었다. 지난 두 번의 선거(제20대 국회의원선거와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이러한 경향의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지난 대선은 77.2%의 투표율을 기록하여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1997년 제15대 대선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촛불대선에서도 1000만 명 가까운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자주 불참하는지, 왜 불참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특정한 계층이 선거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정치과정에서 이들의 이해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는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편향된 상층만의 리그가 될 것이다. 대선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한국정치학회 대선 후 조사)를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론 조사 상 전체 불참자 비율(19.92%)에 비해서 남의 집에 월세로 살수록(35.29%), 실업상태(41.67%)이거나 학생일수록(40.98%), 가구소득이 100만 원 이하 최하층일수록(41.18%) 또는 총 자산이 5000만 원 이하일수록(31.08%) 투표 불참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 조사를 통해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참여의 불평등은 정치적 대표의 불평등 나아가 불평등한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과제로 제시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공언했다. 하지만 노동 3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각종 차별 속에서 밑바닥 노동이라고 불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들은 용역, 파견, 위탁, 사내하청, 하도급, 아웃소싱등 다양한 형태와 명칭으로 존재하고 불린다. 90만 명(2016년 8월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1년 단위를 주기로 반복되는 계약갱신 때문에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 어느 책의 제목처럼 '중간착취자의 나라'(이한 지음, 미지북스 펴냄)가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년 7월 20일)을 발표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정규직 대상에 포함시켰다.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문재인 정부가 헌법개정안에서 야심 차게 제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제33조 3항)에 비해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로드맵은 매우 불충분하다. 이들이 산업 현장에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노동자로 인정될 때 노동존중 사회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투 열풍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지만 성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이슈는 여전히 정치적 쟁점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젠더 이슈 중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낙태의 문제에 대해서는 살펴보자. 두루 알듯이 현재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낙태를 요구한 여성이나 이를 시행한 의사 모두 기소되면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형법 269조와 270조). 예외적으로 근친상간, 성폭행,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임신중절을 허용한다(모자보건법 제14조).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나? 정부 조사는 2010년 조사가 그나마 가장 최근 조사이고 이에 따르면 16만 9천 건의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50만여 건의 낙태가 이루어진다는 최근 연구가 있다(박병배·김춘배 2017).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한국 정부에 낙태를 한 여성에게 부과되는 처벌 조항을 삭제할 것을 검토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시민들은 최근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지난해 9월 30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 및 합법화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와대 청원이 게시되었고 빠른 시간에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또한,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모임 '비웨이브(BWAVE)'의 40명 회원들은 2017년 6월 25일 홍대 앞에서 '내 몸은 나의 것'이라며 시위를 열기도 했다(한겨레 2017/06/25). 하지만, 수십만 명의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낙태 이슈에 대해서 정치권은 논쟁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용감한 '나쁜 여자'들에 의해서 낙태의 문제가 공론장으로 나왔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스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넷째, 새로운 한국 사회를 위한 미투 운동이 지속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성평등을 위한 'pay me too'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 비정규직은 을 중의 을이다. 여성 두 명 중 한 명(54%)은 비정규직이다. 더구나 남성 비정규직에서 비해서 여성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은 36%에 지나지 않는다(2017년 5월 16일 자 <여성신문>). 여성은 경력단절을 겪으며 시간제 노동자로 이중차별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성평등 임금 공시제도와 성별 임금격차 해소 5개년 계획 수립, 남녀 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3% 수준으로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성평등을 적극 실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약의 법제화는 아직 요원하다.  

다섯째, 그동안 사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청년 빈곤의 문제가 있다. 한 조사(김태완·최준영, 2017)에 따르면 청년 중 세 명 중 한 명(2015년 기준 37.1%)은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에 해당한다. 한번 빈곤에 빠진 청년층은 중장년층이 되어서도 탈출하기 쉽지 않다.  특히 '청년난민' 또는 '큐브생활자'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이 청년1인 가구는 주거 빈곤과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청년층의 빈곤은 소득, 주거, 건강, 교육, 고용, 사회보장과 같이 다차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년빈곤 문제는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였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은 여러 가지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과일 것이다. 특히 정치적 국면마다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진정성 있는 감성적 메시지의 역할도 적지 않을 것이다. 비통한 자들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감성의 정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의 약속대로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일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그늘을 비추고 틈을 메우는 제도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국민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민교협의 시선은 프레시안과 민교협 홈페이지에 공동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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